글이 담긴 풍경

첫눈

키키 ^^v 2008. 11. 22. 11:12
저녁 때에 비해서 밤공기가 조금은 덜 차가운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부는 바람의 차가움이

가슴속까지 차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겨울이 오긴 왔군...' 나즈막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비는 아니고... 그렇다. 눈이었다. 하지만 첫눈으로 인정하기엔

너무 시시한 눈이었다. 비같은 눈.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첫눈을 맞고 싶었는데

비처럼 내리는 눈을 애써 외면해버린다. 끝까지 눈이 아니라고 혼자서 우기며 말이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고집하고 싶었다. 첫눈이 아니라고.

'이건 첫눈이 아니야. 소원 절대 안 빌어!' 혼자서 또 중얼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지만 기어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밖을 바라보며.

아직도 비같은 눈은 내리는 것 같았다. 버스의 속력 때문에 눈발의 크기를

가늠하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좌석 옆 창문에는 눈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고 운전석 창문에

내리는 눈은 곧이어 와이퍼로 씻겨졌기 때문에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말자 그녀는 놀라움에 '헉'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그새 하늘이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굵은 함박눈을 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에 우산을 챙겨나왔지만 그녀는 기꺼이 굵은 눈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인정한다.

'이야... 첫눈이구나!'

그리고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는 좀 유치할 수도 있지만 곧바로 소원을 빌었다.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얀 눈 덕에 밤하늘의 깊이가 몸소 느껴지는 것 같았고 하늘의 끝이 보일 것만

같이 그녀의 소원도 하늘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채 첫눈을 맞았다.




------------------------------- 소설 '잊혀진 비밀' 중에서



독일에도 오늘 첫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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