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비밀 5

빈자리

'있을 땐 잘 몰라. 사람이란 동물이 원래 그래. 가까이 있을 때 모르고 항상 옆에 있을 땐 몰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떠나고 나면 알게 돼.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이미 가버리고 난 후, 내 스스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네가 닦아줘야지 위로가 되는거지. 맘 놓고 울 수 있을 때는 몰랐어. 지금은 참고 또 참아. 너의 빈자리가 눈물로 차 버릴까봐 그래서 너의 빈자리마저 없어질까봐 참고 또 참는거야...' 연이가 속으로 외치는 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게 들릴리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연이는 이를 악물고 그를 쳐다보았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 다른 눈을 하고선 서로의 눈을 응시하였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울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

마음의 그물

그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항상 확신에 차 있다고 자부하고 싶지만 사실 흔들리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그가 미워서 한참을 그냥 그렇게 허공에 마음을 맡겼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계속 던져본다. 마음의 그물을. 위로받고 싶어서 그의 마음을 잡고 싶어서 그런데 그물이 허술하게 짜여 있나보다. 자꾸만 빠져 나간다. 마음에서 자꾸만 멀어져 간다. 그녀의 그물이 문제인거니,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이 그만큼 작아진거니. 손을 뻗어본다. 잡히지 않지만. '잊혀진 비밀' 중

키키생각 2009.06.02

첫눈

저녁 때에 비해서 밤공기가 조금은 덜 차가운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부는 바람의 차가움이 가슴속까지 차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겨울이 오긴 왔군...' 나즈막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비는 아니고... 그렇다. 눈이었다. 하지만 첫눈으로 인정하기엔 너무 시시한 눈이었다. 비같은 눈.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첫눈을 맞고 싶었는데 비처럼 내리는 눈을 애써 외면해버린다. 끝까지 눈이 아니라고 혼자서 우기며 말이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고집하고 싶었다. 첫눈이 아니라고. '이건 첫눈이 아니야. 소원 절대 안 빌어!' 혼자서 또 중얼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지만 기어코 자리를 잡..

가슴속의 주머니

연이는 그 말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그 사랑한다는 말이 입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내뱉으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 가슴 속에서 정말 그 누군가 그녀의 모든 오감이 담긴 찢어지긴 쉬운 주머니를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려왔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눈물이 맺히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가슴이 아프다' 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 아픔이 온 몸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랑해, 많이 사랑해." 수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아픔을 참으며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막으려고 애써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힘들어? 왜 먼저 안해주는데~ 한번 해주면 좀 좋아?" 그가 웃으면서 핀잔을 준다. 연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촛점없이 ..

소설 '잊혀진 비밀' 중에서

일교차가 심한 5월, 밤바람이 꽤 서늘하다. 이상하게 손이 차갑다. 손에서 식은 땀이 나면서 손가락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손이 차가워?" 그가 속상한 듯 그녀의 손을 꼭 움켜잡는다. 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따뜻한 그의 기온이 느껴진다. 이 상황이 아직도 많이 어색하기만 하지만 마음만은 어느새 익숙해져가고 있는가보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의 전율이 마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참 예쁘다. 참 부드럽고 예쁘다. 순간 다른 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질 않는다. 급격한 감정변화로 인해 들었던 자괴감, 시작부터가 어쩌면 잘못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아무런 근거없는 생각들이 며칠 그녀를 괴롭혔다. 굳게 닫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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